생활수필 - 그들은 그래서는 안되었다 I
생활수필 - 그들은 그래서는 안되었다 I
  • 미용회보
  • 승인 2020.10.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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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 여름방학, 인테리어 사무실로 실습을 나갔다. 졸업하기 전 진로에 따른 실습기간을 갖게 되는데 통상적으로 방학을 활용하게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실습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도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난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며 디스플레이어가 되기로 했다. 그때 한참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그대 안의 블루’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마네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대하는 자세
졸업을 앞두고 4학년 2학기, 디스플레이 회사에서 수습 과정을 거쳤다.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고된 직업이었다. 낮에는 디자인 한 소품을 제작하고, 밤에는 쇼윈도 안에 들어가 설치 작업을 했기 때문에 명동의 한 복판 쇼윈도 안에서 잠 들기도 여러 번. 그렇게 밤낮없이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은 30만 원이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이런 나에게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은 “무슨 일을 해?”라고 묻는 대신 “얼마 받아?”라고 물으며, 받는 금액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받았던 금액이 맘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일을 배우는 단계였고, 학원비를 내는 대신 돈을 받고 일한다고 생각했기에 금액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지금은 일을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난 배우면서 돈을 받는 거야. 얼마나 좋아?” 훗날 동생은 내가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무척이나 멋있게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생활이 오래가진 못했다. 급여 때문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유학 하고 온 실장이라는 사람은 일만 시작되면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벗어났으니, 도저히 꼴불견이라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래도 그 수습기간 덕분에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일을 했고, 서울이 너무나 지저분하게 느껴질 즈음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나의 첫 업무는 공원 연출. 과학 공원으로의 재개장을 앞두고 있던 터라 16만 평의 공원을 누비며 일을 즐겼다. 800명이 넘는 직원 중 대표이사 표창도 받았으니 열심히 일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과학공원이 개장을 하고 3년이 다 되어가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편하게 다닐 수는 있었지만 재미가 없어지니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난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연봉 계약으로 따박따박 정해진 월급에 보너스까지 받는 생활을 뒤로한 채, 프리랜서로의 시작은 자유는 있지만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일에 대한 대가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받고 싶다고 마냥 높게 책정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의 경우, 견적을 내고 계약을 하면 선수금 50%를 받고 진행하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많거나 어려워 ‘아~ 견적을 좀 더 올릴 걸~~~’ 뒤늦은 후회가 찾아올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차피 내가 낸 견적이기에 두말은 없다. 다만 다음엔 이 과정을 발판삼아 견적을 내면 되는 일이다. 좀 더 받겠다고 일하는 중간에 비용 운운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일을 하는 자세가 어긋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클라이언트에 의해 일이 추가되는 경우엔 다르다. 

 

남편도 나와 다르지 않다. 고작 몇천 원 하는 책이지만 책값은 시기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중고책의 경우 정가보다 훨씬 비싼 책이 더러 있다.) 책을 매입하고 시세에 따라 책값을 매긴 후 책꽂이에 진열하게 되는데, 이 책이 선택되어 판매될 때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쉽지만 매긴 금액으로 판매한다. 반대로 시세가 내려간 것을 확인 한 경우엔? 아깝지만 내려 받는다. 
몇 만권의 책을 매번 다시 확인하며 책값을 정할 수는 없다. 책이 자리에 꽂히기 전 매겨지는 가격이 중고책 값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값을 정하지 않고 표기만 해두는 경우도 있는데, 책방 주인의 안목으로 값이 오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책에 따로 표시를 해, 그 책이 손님에 의해 선택되면 그때 다시 시세를 찾아보고 값을 정하기도 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는 한 번 매긴 금액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절판되어 시세에 많은 변화가 생기면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판매를 보류시킬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중순부터 43일간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서점의 창고 공사다. 1940년대의 창고 건물은 노후되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지반이 약해진 탓에 바닥은 일부 가라앉았고 때문에 기둥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해마다 표시를 했던 남편은 1년 전 보다 얼마만큼 벌어졌는지 확인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사비용 마련이 난감했기에 셀프로 기둥 보강을 하고 고정용 쇠파이프를 구매해 보강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불안은 잠재울 수는 없었다.
결국 은행의 힘을 빌려 대출을 받았고, 공사해야 할 것을 리스트로 만들어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믿을만한 업체를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우리의 연 매출을 들여야 하는 공사는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가 도저히 미루면 안 되겠기에 내린 결정으로 신중해야만 했다. 업체 3곳에서 견적을 받고 가장 높은 금액의 견적을 낸 그곳으로 우린 최종 결정을 내렸다. 남편을 보며 참 착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착한 사람 처음 봤다고, 많이 남는 공사는 아니지만 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들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김시연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 공원연출 및 상품 기획
기업 문화 상품 기획(포스코 外 다수)
웹사이트 디자인(주한 르완다 대사관 外 다수)
엄마의 책장 기록집 <오늘은 고백하기 좋은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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