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⑬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일상문화탐구⑬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김도경
  • 승인 2021.01.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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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식 빨간 벽돌로 된 3층짜리 낡은 건물에 점포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나는 현수막이 붙어있는 그 점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건물을 처음 보았던 때로부터 30년을 훌쩍 지나오며 새 주인을 찾는 이 우편취급소 자리는 건물의 모퉁이를 지키며 점포들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요즘처럼 다양한 택배 물류 산업이 활발해지기 이전부터 작은 동네의 통신 운송업무를 도맡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주던 나름의 ‘노포’였던 셈이다. 여고 시절 방학이면 친구에게 온갖 고민과 안부를 묻는 이야기를 빽빽하게 써서 보내던 손편지, 알록달록한 카드를 만들어 크리스마스실을 붙여 빨간 우체통에 설레는 마음으로 쏙~ 밀어 넣을 때 손가락에 닿던 사각 종이봉투의 모서리 감각을 아직도 기억한다. 새해맞이 연하장을 보내고, 먼 곳에 있는 지인에게 마음이 담긴 선물을 보내고, 해외에 나간 가족에게 깻잎 등 국제소포도 보냈었다. 올해는 군대에 간 아들에게 손편지를 써 군사우편도 보내봤다. 돌이켜보니 십 대의 내가 오십 대에 이르도록 그간 다양한 사연과 물건을 원하는 사람과 만나게 하는 연결점이었던 우편취급소였다. 

우체통은 우체국의 상징물로서, 그리고 편지로 사람과 사람의 소식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우체통은 우정사업본부가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2011년부터 해마다 4.4∼13.2% 감소하고 있으며 3만→1만2천 개로 감소했다고 한다. 우체통의 모양도 시대에 따라 참 다양했다. 점점 커지게 된 것은 아마도 편지 왕래가 그만큼 잦았던 시대적 부응에 따른 디자인이었으리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우체통을 이제는 만나기가 어렵다. 어쩌다 길에서 빨간우체통을 보면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 같은 반가운 마음이 들 정도다. 몇 년 전, 동네의 작은 우편취급소 앞에 경복궁 앞 해치상처럼 씩씩하게 서 있던 우체통마저 어느 날 사라져 무척 아쉬웠다. 허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스마트폰의 전국민화, 이메일의 대중화로 우표를 사서 붙여 보내는 손편지가 구시대의 유물처럼 사라져가고 우체통엔 편지보다 쓰레기가 더 쌓여가니 현실을 인정하고 철수한 것이리라. 게다가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택배를 보낼 수 있고, 하루면 전국으로 물건을 배달하는 대기업 택배 물류업체들이 많아져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금융권도 점포 없는 은행이 기존의 온라인 플랫폼을 거점으로 순식간에 거대 공룡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연말이면 기업의 중요한 연말 업무 중 하나였던 달력, 다이어리를 대규모로 제작하고 연하장에 이름 석 자라도 친필 사인을 해서 보내는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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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등졌던 그러나 마음을 풀고 싶은 그에게, 홀로아파하는 누군가에게 서로의 풍경이 흐르도록 몇년 만에 손편지 한통 보내보자.

동네에서 거의 유일했던 우체통이 사라지고, 우편취급소가 문을 닫은 그 자리엔 어쩌면 또 스마트폰 판매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쓸쓸함이 밀려온다. 편지는 단순한 정보성 글이 아니다. 한 편의 시이자 수필이고, 딱히 소식을 전할 길 없는 저편의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그리움 혹은 절절한 고통을 풀어내는 글이기도 했다. 즉각적 반응이 아닌 궁금함과 기다림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시간의 매체다. KTX가 줄 수 없는 풍경을 완행열차가 주는 것처럼 말이다. 편지의 내용은 물론 나타나는 편지지 디자인, 첫 문장과 끝 문장의 스타일, 구두점을 사용하는 방식도 쓴 사람의 성격과 마음을 나타냈다. 편지는 쓰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 편지를 쓰는 물리적 풍경을 함께 담아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편지’는 그 자체로 이미 다양한 서사를 품은 소재로 문학작품, 영화, 음악, 그림의 단골 소재로 쓰인다. 

편지에 관한 추억 중 하나는 내가 스무 살에 만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빼놓을 수 없다. 고 신영복 선생님이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복역 시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출소 후 펴낸 책이다. 이 책을 하룻밤에 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첫 글을 읽고는 참고 아껴서 하루에 한 편씩만 읽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무 살의 어린 친구가 무엇을 느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다. 아마도 당시 겪어야 했던 삶의 풍경이 무척이나 힘겨웠기에 그 글을 읽기 위해 오늘 하루를 더 살아내보자는 명분을 나 자신에게 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수인으로 사는 그가 감옥 안의 풍경을 이야기하며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풍경을 묻는 그 편지글이 준 감명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만든 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따금 한다.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신영복 선생님이 타계하시기 3년 전, 성공회대학교 특강에서 그분을 뵌다는 생각에 1990년 당시 초판이었던 그 책을 들고 그 앞에 섰다. 초판본 책이기에 출소 직후인 사십 대 무렵의 사진이 실린 그 책을 보시며 “어떻게 이 초판을. 25년을 갖고 있었네요. 이 사진의 나는 참 젊었구나···.” 하시며 문득 눈시울이 젖으시며 첫 장에 사인을 해주시던 그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이십 대 시절 연애편지다.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왔던 편지함 세 박스를 결혼 후 수많은 이사를 하며 분실되었지만, 업무용 파일에 한 장 한 장 파일링해둔 연애편지는 아직도 건재하다. 같은 크기의 시집 두 권의 뒷날개에 특별 제작한 종이봉투를 붙여 손편지를 꽂아 비밀스레 전달했다. 동아리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빌려준 시집을 건네는 척하며 그렇게 손편지를 주고받았다. 일명 ‘연락병’이라고 이름 지은 두 권의 시집이 연결선이 되어 이십 대의 청춘이 각자가 자기 마음속의 풍경을,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미래의 풍경을 종이에 꾹꾹 눌러써서 서로에게 배달했다. 당시 나눴던 말은 세월이 흐르며 말라 흩어지고 마모되었지만 누렇게 변한 편지지에 각자의 필체로 남겨진 활자는 당시의 언어와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해주고 있었다. 지난 늦가을,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꺼내 읽으며 상처에 가까워지고 조금 더 자신에게 정직해졌던 밤의 시간들이 있었다. 

2021년 「일상문화탐구」의 첫 제목을 붙잡은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는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의 <식후에 이별하다>라는 시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자 2019년에 출간된 첫 산문집의 제목이다. 화두처럼 툭 던져지는 이 한 문장을 그대로 모셔와 2021년을 맞이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등졌던 그러나 마음을 풀고 싶은 그에게, 홀로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서로의 풍경이 흐르도록 몇 년 만에 손편지 한 통 보내보자. 그냥, 그렇게 해보자.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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