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16 - 제주에서 걸었소, 제주애서(愛書) 읽었소 3
일상문화탐구16 - 제주에서 걸었소, 제주애서(愛書) 읽었소 3
  • 김도경
  • 승인 2021.04.0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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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마라도 성당 - 사진 김도경
▲ 사진 1) 마라도 성당 - 사진 김도경


M에게. 
오늘 편지가 제주 한 달살이 이야기를 전하는 마지막 편지네요. M에게 나누고 싶은 마지막 편지의 첫 사진을 고르느라 고민을 좀 많이 했어요. 이곳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 위치한 마라도 성당이에요. 전복, 문어, 소라 형상에 유리 천장 빛이 내부로 내려오도록 설계된 마라도 성당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라고 해요. 마라도에 가게된 에피소드가 있어요. 서귀포 모슬포항에는 마라도행과 가파도행을 함께 운항하는데, 그날 무엇에 홀렸는지 ‘올레 10-1코스가 있는 가파도 승선표를 사야 해!’라고 생각하고는 정작 매표소에서는 “마라도행 주세요.”라고 했답니다. 행선지를 틀리게 말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출항 시간이 다 되어 승선을 기다리다 깨달았을 때는 당일 매표가 이미 마감된 상태. 우여곡절 끝에 찾은 마라도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중에서도 마라도 성당이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어요. 아마도 온전하게 기도 공간으로 채워진 이 작은 성당에서 올린 기도 때문일 겁니다. 제주 여행의 도반, 안젤라와 제가 그날, 2월 4일. 십여 분의 차이를 두고 머물며 저마다 올린 간절한 기도……. M에게 이 기도에 대해 자세히 전할까 하고 많이 고민했지만 어떤 것은 ‘……’의 말줄임표로 대신하는 것도 좋겠어요. 도반 안젤라가 좋아하는 ‘…(쩜쩜쩜)’으로 말이지요. 

M.

코로나가 세상을 멈추게 해도 사월의 봄은 우리 앞에 돌아와 주었네요. 코로나로 지구별의 수많은 봄축제가 멈춰도 계절은 브레이크 없이 꽃이 만개하는 봄을 우리 앞에 보내주었어요. ‘봄이 오면 뭐 해. 1년이 넘도록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라고 투정 부리기 전에 마음을 돌려 생각해봅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백신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더없이 신비롭고 뭉클한 대자연의 순환과 생명력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늘 돌아오는 봄’이라는 ‘순환’과 팬데믹 상황에서 맞이한 ‘오늘의 봄’이라는 ‘변화’ 사이에서 때로 길을 잃고 혼란스럽기도 하지요. 길을 잃고 끊어진 것만 같은 그 길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분명하고도 엄중한 진실은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봄’은 우리의 아쉬움과는 무관하게 그저 담담하게 ‘이 봄’으로 와야 할 때 와주었다는 것. 

M.
사무실 책상 위에는 나를 걷고 싶게 만드는 두 개의 사물이 놓여있어요. 하나는 파란색 작은 수첩이에요. 올레길 26개 코스의 시작점과 중간점, 도착점에서 스탬프를 찍어 완주를 증명하는 올레 수첩이죠. 저는 그 수첩을 블루북이라고 이름 지어 불러요. 그 책 표지에는 제주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된 제주의 말이 그려져 있지요. ‘간세’라 불리는 제주의 이 캐릭터는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에게는 올레길에서 걸어가야 하는 길의 방향을 가리키는 매우 중요한 표상이에요. 이 작은 파란 수첩에 그려진 제주 올레길 425㎞ 26개 코스를 보고 있노라면 전봇대에서, 밭담 사이 작은 골목길 담장 모서리에서, 오름의 나뭇가지 위에… 묶일 수 있는 어떤 곳에서든 제 몸을 묶어 바람에 흔들리며 올레꾼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8,300여 개의 파랑과 주황으로 된 리본들이 떠올라요. 그러노라면 이내 나는 올레 지도 속으로 그만 퐁당 빠져 걷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해안 올레길에서 데려온 검은 돌이에요. 주워온 돌 하나로도 제주에서의 풍경에 빠져들게 해주는 작은 사물이지요. 

저는 책을 읽을 때 흐름을 따라 읽어야 하는 소설이 아니라면 목차 순서를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읽고는 해요. 올레길 26개 코스도 그렇게 순서에 걸리지 않고 걷고 싶어요. 내가 왜 올레길을 걷고 싶은지 나는 어떤 풍경을 더 좋아하는지, 내 몸의 컨디션은 어떤지 아주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어느 코스를 고를지 좀 더 수월해질 수 있어요. 일이든 관계든 여행이든 나를 알아야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거겠지요. 1코스부터 순차적으로 걸어도 되겠지만 2년에 걸쳐서 혹은 2년 내 완주해야 완주증을 받는다는 제도의 그물에도 걸림 없이 자유롭게 걷고 싶어요. 시간이 걸리면 어때요. 나는 그저 걷고 생각하고 그리고 걷고 싶을 뿐이니까요.

M.
‘완주’라는 성과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하고 시작한 올레길이었기에 그저 ‘걷고 싶었던 마음’을 몸으로 해소하며, 내 몸으로 증명해내며 충분히 느끼며 걸었던 시간이었어요. ‘올레길’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걷는 길’이었기 때문이지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열망하던 많은 이들을 제주도 올레길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해준 눈 밝은 이가 먼저 걸어간 길 덕분이지요. 인생에도 이런 코스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생각해봐요. 올레길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었지만 아무도 걷지 않았다면 그냥 길, 이었겠지요. 여러 사람이 밟아나감으로써 비로소 ‘올레길’이라는 제주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확보했듯이 나의 길은 나에 의해, 나의 주체성을 중심에 두고, 충실하게 살다 보면 나만의 길이 될 것임을 믿고 싶어요.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의 발걸음을 옮기면 되는 것. 걷고 생각하고 걷고. 반복하다 보면 순환이 되고 순환과 동시에 변화를 겪고 그 경계마저도 잊다 보면 시작도 끝도 초월하게 되는 지점에서 간결한 삶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고 싶어요. 

▲ 사진 3) 구좌읍 세화리 종달마을 갈대 밭담 _ 사진 김도경
▲ 사진 3) 구좌읍 세화리 종달마을 갈대 밭담 _ 사진 김도경

 

M.
올레길을 걷다 보니 버려진 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작하지 않아 사람 키보다 훌쩍 더 커버려 갈대밭으로 변해버린 그 땅을 농작물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과연 버려진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중산간 마을을 산책하던 어느 날 아침. 경작하지 않은 밭에 움쑥움쑥 솟아올라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들풀, 갈대를 바라보다 그 자연스럽고 질긴 생명력에 문득, 눈물이 핑 돌았어요. 서울의 집에 돌아와 한강으로 이어지는 천변의 갈대를 보며 갈대에 땅을 내어준 종달마을의 밭담을 떠올려요. ‘쓸모없음’으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잠시 안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담대함이 느껴진 풍경이었답니다. 서울의 천변을 걸으며 올레 6코스에서 만난 바닷가 보목마을을 떠올리고, 퇴근길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김녕에서 비자림으로 돌아오던 길에 눈 앞에 펼쳐지던 검붉은 노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송당리 하늘이 겹쳐지곤 해요. 어쩌면 이 편지는 점점 사라지는 그 느낌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저의 몸부림이 활자가 된 편지입니다. 답장을 받을 수 없는 편지를 일방적으로 보내는 제 편지로 M에게 잠시라도 ‘이쪽의 풍경’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래요. 그동안 편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안녕, M.

P.S : 참! 제주를 떠나오기 전날, 1월 초 제주에 와서 만난 세화리의 그 말을 다시 만났어요. 제가 이제 집에 간다고 건너편에서 작별인사를 하니 글쎄! 갑자기 그 말이 고개를 숙이는가 싶었는데 풀밭에 벌렁 드러눕더니.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발버둥을 치며 한참을 히히힝~~하며 슬프게 우는거예요!(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살아 있는 말이 저러고 있는 모습은 처음 봤답니다!)

▲ 사진 4) 안녕, 세화 간세 _사진 김도경
▲ 사진 4) 안녕, 세화 간세 _사진 김도경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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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경 2021-04-01 20:00:25
5월엔 친정엄마와 가파도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마라도 주세요"~~~ㅎㅎ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와 가파도 청보리를 보러갑니다.

마라도의 작은성당도 가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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