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⑱ - 이사, 익숙한 것과의 결별 2
일상문화탐구⑱ - 이사, 익숙한 것과의 결별 2
  • 김도경
  • 승인 2021.05.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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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없는 날의 이사 문화
우린 무엇을 바라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이 이사를 많이도 다녔다. 그간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옮겨 다니며 단 한 번도 ‘손 없는 날’을 택일해 이사한 경우가 없었다. 이사풍습에 대해 딱히 유념하는 문화적 토양이 없기도 했지만 이사 비용의 차이가 ‘손이 있을지도 모르는 날’에 이사를 감행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현재에도 ‘손 없는 날’ 이사는 전통 생활문화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어오는 생활풍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손’이란 것은 무엇일까. 우리 문화 풍습에서 말하는 ‘손’은 날짜에 따라 동서남북 4방위로 돌아다니며 인간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귀신’을 뜻한다. 즉, 손(損, 덜 손)은 가진 것을 잃거나 줄어들게 하는 손님인 귀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사 오기 전 집 거실에서는 맞은편 아파트 뒤 베란다가 보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어느 집의 창틀 바깥에 매달린 북어 한 마리. 흰 명주실에 둘둘 감긴 마른 북어는 수년간 그 모습 그대로 몇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냈다. 푹푹 찌는 태양 아래에서도, 세차게 내리는 장맛비에도,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에 실에 엉킨 몸이 이리저리 뒤집히고도 제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는 북어인지 나무토막인지 분간이 어려운 형체가 되었고, 어느 날 보니 사라졌다. 요즘에는 실물이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 예쁘고 앙증맞게 기획해 판매하는 액막이 북어 등 관련 상품들이 여럿 있다. 의미는 이어가되 시대에 맞는 형태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삿날 북어에 관해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 동시가 있어 소개해본다. 


수상한 북어

새집으로 이사 온 날,
북어 한 마리 현관문 위에
매달고 가신 할머니.
두 다리 뻗고 주무신대요.
귀신 걱정 도둑 걱정 안 하신대요. 

부릅뜬 북어의 눈이 감시 카메라라도 되는 걸까요?
귀신이나 도둑이 들어오면 뾰족한 머리로
박치기라도 하는 걸까요?
그것도 아님 둘둘 감고 있는
저 실타래 속에 무전기라도 숨기고 있는 걸까요.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아무래도 수상쩍은 북어 한 마리. 
내 눈치 살피느라 감지도 못하는 저 눈.
시치미 떼느라 먼 산만 바라보는 저 눈 좀 보세요.

<수상한 북어> 동시, 강지인


다양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참 애틋한 이사풍습

우리 전통 생활 문화 중 이사풍습만큼 다양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애틋한 풍습이 있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이사 풍습은 이사 전, 이사 시, 이사 후로 구분한다고 한다. 이사 전에는 일진과 방위를 보고 나쁜 날에는 가능한 출타를 하거나 이사를 하지 않도록 유의했다. 이사 때 풍습은 매우 다양한데 들어보거나 해봤을 만한 몇 가지만 들어보기로 한다. 

솥 안에 요강을 넣어간다. 솥과 요강은 기본적인 생리 조건을 담당하는 근본적인 생활 도구이니, 생활이 순탄하게 이어져 가기를 바라는 뜻이다. 요강은 오줌을 뜻하는 것인데, 이는 부정(不淨)을 억누르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사할 집에 도착하면 다른 물건보다 제일 먼저 가장 큰 방에 솥을 들여놓는다. 솥은 생명을 의미하는 밥과 직접 관계가 있는 물건이라 먼저 들이는 우대를 했다. 이사를 하면 솥 거는 일을 중요시했고, 이것도 길일을 택하여 행하였다. 이사 갈 때 대문 앞에 부정을 막는 의미를 지닌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 자루를 마지막에 가지고 나오고, 이사 와서는 맨 먼저 가지고 들어가기도 한다. 이사 갈 때 붉은 팥떡을 해서 장롱 안에 넣어간다. 떡이 풍년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고, 붉은색이 장롱과 함께 붙어 올지도 모르는 악귀를 쫓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다.

다른 것은 기억에 없지만 이사 후 팥떡을 해 옆집 뒷집 건넛집에 떡을 돌리며 인사했던 기억은 떠올랐다. 심부름하며 골목에서 고소한 팥 시루떡의 끄트머리를 잡아 한 입 떼어먹었던 발칙한 유년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정작 나는 이사를 하며 팥떡을 돌리지도, 솥을 먼저 들이지도, 소금을 뿌리지도 북어를 문에 매달지도 않았다. 이번 이사도 그간의 이사와 다를 게 없었지만 조금 다르다면 다른 점이 있었다. 짐 정리 후, 아이가 유아 때 쓰던 붉은색 나무 의자와 갖고 놀던 호두까기 병정 인형들을 현관 중문 앞에 배치한 것이다. 팥 시루떡처럼 붉은색 나무 의자가 주는 액막이와 병정 인형들의 부릅뜬 여덟 개의 눈이 북어처럼 안전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사풍습의 의미를 집 안의 물건으로 나름대로 취사하여 재구성했다고나 할까. 화분 받침으로 쓰던 붉은 의자, 특별한 역할 없이 잉여물이 되어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붉은 병정들을 한데 모아 새집에서의 제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몇 해 연속하여 관람했다. 공연이 끝나고 판매하던 나무로 된 ‘호두까기 병정’ 인형을 하나씩 사 모으며 병정들과 함께 아이도 성장했다. 잦은 이사로 부서지고, 없어지며 이제 네 개의 호두까기 병정만 남았다. 누군가 버린 나무 의자를 주워와 당시 아이가 원했던 색인 ‘빨간색’을 직접 발라주니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들이 수고로움과 비용을 더 치르며 이사 지침들을 조심스레 따르며 무엇을 바란 것일까. 무엇을 피해가고자 한 것일까. 떠나는 집에 대한 고마움은 가져가고 그간의 액운은 모두 놓아두고, 옮겨갈 집에서의 풍요와 안전, 건강을 기원하는 소박한 바람이 시작이고 끝이리라. 유념하며 집을 옮기고 새집에서 무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풍습의 긍정적인 측면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하는 간결한 의식으로 이해하면 될 터이다.

 

이사, 결별과 사귐
이전 동네의 풍경과 결별 후 새로운 동네의 후미진 곳까지 구석구석 걸으며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을 찾아서 걷는다. 그중에는 마음에 쏙 드는 풍경도 있고, 굳이 담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장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에게 다 좋은 사람이 가능하지 않듯이 어떤 장소는 누군가에는 너무 편안하지만, 그 편안함이 누구에게는 지루함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저마다의 환경과 조건에서 최대한 취사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 자신을 잃지 않는 자기다움과 아름다움을 찾아 달팽이처럼 스르륵 스르륵 느린 걸음으로 풍경을 발견하며 사귀는 중이다.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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