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 노매드랜드
시네마 리뷰 - 노매드랜드
  • 신대욱
  • 승인 2021.05.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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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계속되는 한, 삶은 이어진다


“우리는 안녕이라고 하지 않아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죠.”
항상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홈(Home)’은 길이다. 길로 떠나고 길로 돌아오는 삶이다.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노마드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을 ‘홈리스(Homeless)’가 아닌,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일컫는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집 대신 길 위의 삶을 택한 이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마드랜드>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시카 브루더는 미국 금융위기 이후 고정된 주거지 없이 자동차에서 살며 저임금 떠돌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3년여에 걸친 밀착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이 논픽션을 읽고 감동한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판권을 구입하고 제작자로 나서면서 완성됐다. 맥도맨드는 이 영화의 연출 적임자로 중국계 신예 감독인 클로이 자오를 선택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원작에 없던 인물인 펀(프랜시스 맥도맨드)과 데이브(데이비드 스트라탄)를 새롭게 창작해내면서 원작과 다른 새로운 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제작자로만 나서려던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주연인 펀으로 이끌었다.

길 위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여정

영화는 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잡은 기업인 US석고에서 일하던 펀은 2008년 몰아친 금융위기 여파로 한순간에 직장을 잃는다. US석고는 건설 자재인 석고보드를 만드는 회사로, 광산이 있는 엠파이어 인근에 공장을 두고 운영해왔다. 엠파이어는 대기업인 US석고로 인해 형성된 마을이다. 오랜 시간 남편과 함께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며 살던 펀은 남편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다. 펀은 남은 짐을 정리하고 낡은 밴을 구입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영화는 2011년 US석고 공장이 폐쇄됐고, 엠파이어는 우편번호가 사라졌다는 자막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우편번호가 사라졌다는 것은 마을에 사는 이들이 없어 ‘유령도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주인공 펀이 이곳을 떠나 만나는 수많은 노마드들과 교류하며 이들의 삶에 섞여드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다루는 노마드들은 새로운 유형의 유목민이다. 정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사실 미국은 유랑하는 노마드들이 건너와 일군 나라다. 서부 개척기나 1930년대 대공황, 1960년대 히피운동에서도 노마드들은 존재했다. 그렇지만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서 정착했다는 점에서 2008년 이후 발생한 노마드들과 다르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거리로 내몰렸다. 대부분이 중산층 백인들로, 집을 포기하고 길 위의 삶을 선택한 퇴직한 노년의 노동자들이 주를 이룬다. 밴(또는 RV)을 타고 단기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노마드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이다.
원작 논픽션은 이같은 사회 현상과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을 둘러싼 열악한 노동 구조를 보다 강도 높게 비판한다. 아마존의 단기 일자리 프로그램인 캠퍼포스가 대표적이다. 영화에서는 중립적으로 그려졌지만 원작에선 이 시스템의 착취구조를 한 장을 할애해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희망

영화는 이같은 노마드를 둘러싼 억압 구조보다는 이들의 ‘선택’에 주목한다. 안정된 정착을 거부하고 ‘바퀴달린 집’에서 기거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선택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따라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렸지만, 그 길 위의 삶을 창조적으로 수용한 이들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노마드들은 실제 자신의 삶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공의 인물인 펀과 데이브를 제외한 대부분은 전문 연기자가 아니다. 펀이 길 위에서 만나는 주요 인물인 린다 메이(원작의 중심 인물)나 샬린 스완키, 밥 웰스 등은 실제 노마드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게 되고, 이들이 길 위의 삶을 선택한 의지를 수긍하게 만든다.
영화 속 펀이라는 인물의 여정은 이들 노마드들의 삶을 압축하고 있다. 떠밀리듯 거리로 나선 펀이 스스로의 의지로 노마드로서의 삶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펀은 주로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다. 린다 메이(원작의 중심 인물)를 통해 노마드 생활의 기초적인 정보를 얻고 그녀가 노마드가 된 사연에 귀 기울인다. 오랜 노마드 생활로 병에 걸린 스완키에겐 병원대신 알라스카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그들의 삶에 다가간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펀이 노마드 공동체의 리더 밥 웰스에게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던 펀이 비로소 이들이 서 있는 길 위에 편입된 셈이다.
영화 말미, 펀은 처음 떠나온 엠파이어를 다시 찾는다. 집은 폐허처럼 변해있고 문은 활짝 열려 있다. 펀은 텅 빈 집을 지나 뒤뜰을 거쳐 사라진다. 펀이 사라진 뒤뜰 너머엔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다. 아마도 펀은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진정한 노마드로서의 삶이 비로소 시작되는 셈이다.
다시 길 위에 선 펀의 마음은 영화 중반부에서 마주친 청년에게 들려준 시에 담긴 내용과 같을지도 모른다.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이다. 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짧지만,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고 생명을 주리라는 내용이다. 지나온 날들은 여름처럼 짧지만, 시간의 일부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결국 길이 계속되는 한, 삶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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