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리뷰] 파이프라인, 강호아녀
[시네마리뷰] 파이프라인, 강호아녀
  • 신대욱
  • 승인 2021.07.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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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의리가 사라진 시대, 장르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

 

화산은 다 타버리고 남은 재로 이뤄졌다. 한국과 중국은 한순간의 폭발처럼 고도성장기를 거쳤다. 고도성장 수혜를 입지 못한 많은 이들은 흡사 다 타고 남은 재처럼 밀려났다. 그런 변화 속에서 사라지고 파괴된 것들이 도드라졌다. 잃어버리고 지워진 흔적들로 빈 자리가 채워졌다. 언젠가 다시 끓어오를지도 모를 욕망만 간직한 채 식어갔다. 영화 <파이프라인>과 <강호아녀>는 극심한 변화 속에서 밀려난 이들의 모습을 장르영화라는 방식으로 이색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도유 범죄 소재, 경쾌한 ‘막장’ 영화

<파이프라인>은 각기 다른 이유로 ‘도유꾼’으로 뭉친 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저마다의 장점을 지닌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언가를 강탈하는 케이퍼무비 장르다.
손만 대면 대박을 터트리는 도유 업계 최고 천공기술자 핀돌이(서인국)는 수천억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 거대한 판을 짠 대기업 후계자 건우(이수혁)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빠져 위험천만한 도유 작전에 합류한다. 여기에 프로 용접공 접새(음문석), 땅 속을 장기판처럼 꿰고 있는 나과장(유승목), 괴력의 인간 굴착기 큰삽(태항호), 이 모든 이들을 감시하는 카운터(배다빈)까지 합류한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에 어리숙해 보이지만 집요하게 도유꾼을 쫓는 경찰(배유람)까지 섞이면서 사건이 엉킨다.
<파이프라인>은 도유범죄를 전면에 다룬 국내 첫 영화다. 도유 범죄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기름을 빼돌려 이를 다시 판매하는 특수 범죄를 말한다. 연출을 맡은 유하 감독은 고속도로 땅 아래에서 땅굴을 파며 기름을 훔치다 적발된 도유꾼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유하 감독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단순 연장을 들고 벌이는 이들의 범죄 행각이 기상천외하면서도 어딘가 코믹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파이프라인>은 오로지 돈을 목표로 모인 여섯 도유꾼들이 위기와 갈등을 겪으며 작전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오는 블랙유머도 신선하다. 지하 땅굴 세트와 지하 통로 액션, 대규모 가스 폭발 신 등에서도 색다른 스펙터클을 전한다.
무엇보다 여섯 도유꾼들이 굴을 파헤치는 장면은 벼랑 끝에 몰려 막장에 다다른 이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희망 없는 청년세대의 한 모습처럼 비치기도 한다. 막장에 다다른 이들보다 더한 막장은 누구인가란 질문도 타당하다. 한탕주의나 관료주의 비판도 인상적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는 배우들의 앙상블도 볼만하다. 반전도 그럴싸하다. 그렇지만 익숙한 전개와 예측 가능한 사건 전개는 흠이다.

멜로 누아르 방식 차용, 급변하는 중국 통찰

<강호아녀>는 중국 6세대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지아장커의 최근작이다. 홍콩 누아르 영화의 틀에 멜로가 가미됐다. 2001년 중국 산시성 다통시에 사는 차오(자오 타오)와 이 지역의 조직 보스 빈(리아오판)은 연인 사이다. 차오는 라이벌 조직의 공격에 빈을 구하기 위해 총을 발포하게 된다. 그로 인해 감옥에서 5년을 복역하고 출소한다. 빈은 1년의 적은 형량을 받는다. 먼저 나온 빈은 차오를 찾지 않는다. 출소한 차오는 빈을 찾아가지만 그에겐 다른 애인이 있다. 결국 빈을 놔줄 수밖에 없던 차오는 새로운 출발에 나서게 된다. 시간이 흘러 2018년 다퉁시에서 자리잡고 있는 차오에게 빈이 찾아오면서 일상은 다시 흔들린다.
<강호아녀>는 2001년부터 2018년까지 17년에 걸쳐 두 사람의 인연과 이별, 재회를 담아낸다. 2001년과 2006년, 2018년 현재까지 세 번에 걸친 시간대에 나뉘어 서사가 전개된다. 17년에 걸친 서사를 통해 중국의 급속한 변화를 두 인물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중첩해 보여준다. 두 인물은 변화에 밀려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을 상징한다. 그 시간들은 산시 다퉁에서 싼샤 펑제, 신장을 거쳐 다시 산시 다퉁으로 돌아오는 차오의 긴 여정이기도 하다. 그 긴 시간동안 산시 다퉁은 쇠락한 광산도시에서 고층빌딩이 즐비한 새 도시로 변화했고, 펑제는 싼샤댐이 들어서면서 수몰지구가 됐다. 영화의 출발점인 2001년은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유치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해로, 고도성장의 출발점과도 같은 상징적인 해이다. 그리고 차오가 출소한 2006년은 싼샤댐이 완공된 해이다.
이런 중국의 변화를 무협소설의 강호에 빗대 무엇이 사라지고 파괴되었는지 혹은 잃어버렸는지를 포착한다. 영화 초반부 조직간 의리를 다질 때 홍콩영화 <첩혈쌍웅>의 주제곡이 흘러나오는 것이 상징적이다. 긴 시간동안 강호의 의리를 지키는 것은 차오뿐이다. 차오는 빈과 화산을 바라보며 “화산재가 고온에서 연소됐기에 가장 깨끗할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 ‘Ash is Purest White(재는 가장 순수한 흰색)’가 여기서 나왔다.
차오는 시간이 흘러 거동이 불편해진 상태로 찾아온 빈을 돌본다. 극심한 변화만큼 강호는 타락했고 배신과 사기가 난무해졌지만 차오는 강호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가장 순수한 존재로 남은 듯하다. 차오의 보살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빈은 다시 차오의 의리를 저버리고 떠나간다. 망연자실하게 벽에 기댄 차오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의 노력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으리란 점에서다. 더구나 이 마지막 장면은 감시 카메라(CCTV)로 찍힌 영상을 통해 보이며, 점점 확대되면서 옥죄는 형태로 나타난다. 국가 통제 시스템에 대한 경고 혹은 불안함의 표현인 듯하다. 얼마나 더 하얗게 타들어가야 잃어버린 가치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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