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⑲ - 아무튼, 정원_희망을 품다
일상문화탐구⑲ - 아무튼, 정원_희망을 품다
  • 김도경
  • 승인 2021.07.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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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인터넷
▲ 출처 - 인터넷

너는 우리를 아프게 했으나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꽃이요!”
“맞습니다! 그런데 이 꽃이 담긴 이것은 무엇일까요?”
“················”
“이것은 팔레스타인에 떨어진 폭탄 탄피입니다.”
“아·····.” 여기저기서 짧은 탄성이 섞여 나온다. 
“팔레스타인의 한 여인이 자신의 마을을 폭파해 폐허로 만들고 가족과 이웃을 다치거나 죽게한 그 탄피를 모아 이렇게 생명의 싹을 틔웠네요.”  

2019년 늦은 봄이었다. 그해 5월 강의에서부터 한 장의 사진을 슬라이드에 띄워 질문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 사진은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게 했고, 내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고 파괴와 죽음이 일상이 된 땅, 팔레스타인. 짐작건대 사진의 주인공은 초로의 여인. 주름지고 투박한 손으로 마치 탄피에 심은 초록 생명들에게 인공 호흡하듯 가만가만 탄피 입구에 생수병 입구를 마주해 물을 붓고 있는 모습. 뭉클함이 몰려들었다. 지구상의 많은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폭탄. 그 쓰임을 다한 껍데기를 폐허 속에서 그러모아 구덩이를 파 검고 둥그런 작은 몸에 생명의 씨앗을 심어 초록의 싹을 틔워낸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웃들은 그녀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이 사진 한 장으로 수많은 장면이 내 안에서 질문을 이어갔다. 자연에게는 본래의 쓰임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은 따지거나 구분하거나 차등 두지 않고 생명의 기운을 원하는 자에게, 원하는 곳에 모아주었다. 아픔을 보듬으며 다시 살아가자고, 일상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하는 묵묵함을 떠올리게하는 소중한 사진이다.

못 말리는 그녀
노년의 인생 정원

이 사진을 보며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손과 발, 몸을 늘 움직이셨던 엄마. 대가족으로 복닥거리는 비좁은 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어떻게든 찾아내 비집고 식물을 키워내셨다. 심지어 바닥이 시멘트로 된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때는 직접 곡괭이를 들어 바닥을 깨 흙이 드러난 자리에 시장에서 사 온 사철나무, 포도나무 뿌리를 심고는 했다. 그렇게 엄마의 곡괭이질에 아무렇게나 깨진 회색 시멘트 조각이 흙과 식물과 어우러져 꽤 멋진 회색 울타리로 재탄생되곤 했다. 막다른 골목집에 이사를 왔을 때는 가족 모두가 뜯어말리는데도 집 앞 골목길 보도블록을 일부 들어내는 걸크러쉬 면모를 보이며 뚝딱뚝딱 작은 공유 화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꽃이나 작은 나무를 심고 매일 아침 정성스레 물을 주던 못 말리는 그녀, 엄마 덕분에(?) 가족들은 흙과 돌을 몸으로 지어 날라 작은 화단을 만드는데 자주 강제 동원되어야 했다.

부모님께서 몇 해 전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사를 한 집에는 넓은 마당이 있다. 단언컨대, 그 집을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가 화단을 마음껏 가꿀 수 있는 흙이 많은 마당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마도 엄마가 꿈꾸던 인생 정원을 실행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마당은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대문 앞에 정성스레 가꾼 초록 생명을 품은 작은 화분은 작으면 작은 그 모습 그대로 온 우주를 담는 미니멀한 정원이 되었다. TV에 나올만한 넓고 화려하고 대단한 수목을 심은 그럴싸한 정원은 아니다. 그러면 어떤가. 그저 작은 화분, 돌멩이, 버려진 양철통을 주워와 꽃과 작물을 심어 관심과 사랑, 물과 햇빛 그리고 바람길을 열어주는 그녀만의 정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원이 아니라 돌보며 가꾸며 다음날 아침 틔울 싹과 꽃을 기다리는 희망의 정원이다. 그녀가 정원을 돌보는 것은 어쩌면 팍팍한 자신의 자리를 지켜 가족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친절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생각해보니 엄마가 인생의 갈등과 큰 시련을 만나 아파하고 좌절하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통과해 온 배경에는 그녀가 가꾼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인 소박한 정원이 큰 버팀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진 속 거친 손의 여인을 만나며 엄마의 거친 손을 떠올렸다. 

구덩이 하나 깊숙이 파서
진흙으로 부드럽게 메우며

요즈음 지친 마음과 몸을 식히기 위해 가장 많이 보거나 읽는 콘텐츠의 키워드 중 하나가 ‘마당, 정원’이다. 영상 하나를 보면 알고리즘이 찰떡같이 나의 심리적 동선을 지켜보고 꿰뚫으며 연관 콘텐츠를 퍼부어준다. 심지어 특정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대별로 첫 실행화면에 짠~하고 제시해준다. 이만하면 소름이 슬쩍 돋는다. 아무튼, 흙에 기반한 콘텐츠를 많이 보고 있다. 정원(庭園). 사전적으로는 조형적인 의도에 따라 계획적으로 만든 마당을 뜻한다. 보통 수목을 심고 샘과 연못, 분수, 돌, 조각상, 테라스, 화단, 잔디밭, 정자, 기타 정원건축을 배치, 산책로와 조합하여 각 부분을 보기 좋게 꾸미는 자연재료나 인공물을 이용해 꾸민 뜰이나 동산을 정원이라고 한다. 정원을 건축에 딸린 뜰과 동산으로서 인공적인 건축 공간에 자연적인 요소를 이루어주는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조경보다는 축소된 개념이며 공공적인 차원이 아닌 사적인 소유의 개념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하나 현대에는 공공적 차원으로 ‘정원’의 개념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식물 킬러였던 내가 식물 키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9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다음 회에는 ‘정원’과 관련된 사회문화 현상과 영화, 문학작품 등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오늘 나는 집 뒤 언덕진 곳에 
뒤엉킨 뿌리들과 자갈이 많은 땅을 파헤쳐 
구덩이 하나를 깊숙이 팠다. 
그 구덩이로부터 돌을 하나하나 골라냈고 
메말라 푸석거리는 흙도 파냈다. 
그러고는 한 시간 동안 그 오래된 숲속의 
여기저기에 무릎을 꿇고 손에 삽을 들고 
썩은 밤나무 밑둥치에서 
그 검고 버슬버슬하고 따뜻한 버섯 냄새가 나는 흙을 파내 
두 양동이에 가득 담아 옮겼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나무 주위를 이탄질의 흙으로 잘 감싸주었고
햇빛에 따뜻해진 물을 살살 부어 
뿌리를 씻어주고 진흙으로 부드럽게 메워주었다.

헤르만 헤세 <정원일의 즐거움> 중 일기

*이탄질의 토양이란 죽은 식물이 쌓여 형성된 토양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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