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⑳ - 아무튼, 정원_ 나를 만나다
일상문화탐구⑳ - 아무튼, 정원_ 나를 만나다
  • 김도경
  • 승인 2021.08.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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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모두의 정원

▲ 사진제공 - 김도경
▲ 사진제공 - 김도경

한여름 햇볕 샤워를 즐기며 생태공원에 걸어갔다. 이마와 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여름에 만나는 초록빛 자연은 몸과 마음의 고단함 그리고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만큼 싱그럽다. 저기 나무 의자 하나가 있다. 산책할 때마다 앉아보고 싶었지만 늘 누군가 앉아있어 아쉬워하며 지나쳤던 의자가 비어있다. 아! 드디어.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의자를 향해 걷는다. 마치 모네의 그림 속 풍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무 의자에 앉는다. 어느새 나도 그림의 오브제가 된다. 오전의 햇볕에 달궈진 나무 의자가 뜨끈뜨끈하다. 땀이 나도 기분 좋은 따뜻함이 몰려온다.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모니터에 지친 현대인의 눈. 초록 습지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담긴다.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은 눈을 감고 잠시 정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머리 위에서 수양버들이 자연의 속도에 제 몸을 흔들며 살랑살랑 부채질해준다. 이곳은 요즘 내가 자주 찾는 비밀의 정원이다. 머리와 몸을 식히러 달려가는 안식처다. 이 정원을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의 압력과 열기가 빠져나가며 서서히 해독되는 느낌이 들며 얼마간의 회복이 된다.  

‘비밀의 정원’이라고 말했지만, 이곳은 모든 이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오픈 정원이다. 입장료도 없고 시간제한도 없다. 코로나 시대에 어딜 들어갈라치면 내 몸의 온도를 검열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기록해야만 하는 방문 인증 절차도 없다. 상식의 선에서 지켜야 할 기본 수칙만 지키면 된다. 자타가 공인하는 식물 킬러이며 TV에 나오는 멋진 정원을 일굴 시간도 바지런한 몸도, 정원 가꾸기에 들일 돈도, 넓은 땅도 혹은 테라스도 없어서 ‘정원은 남의 떡’이라며 낙담하고 포기하지도 않아도 된다. 소유하지 않고 집 밖 정원을 공유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내가 사는 동네를 조금만 탐구하면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는 크고 작은 공유 정원이 곳곳에 있다. 정원을 직접 가꾸는 노동의 맛을 느끼긴 어렵지만 내 몸과 마음을 일으켜 집 밖의 정원을 찾아보자. 산책도 하고, 잠시 앉아 내 앞에 펼쳐진 작은 소우주를 온전히 누려보자. 수많은 공공의 정원사들이 땀 흘리며 다양한 식재를 심고 돌보며 집 밖 정원을 찾는 산책자에게 행복감을 선사한다. 

집 밖의 공공 정원을 선택하고 찾아가는 나의 움직임이 필요할 뿐이다. 여러 곳을 다녀보면 나 자신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나는 깔끔하고 단정하게 줄지어 선 듯 잘 가꿔진 정원보다는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식 정원에 들어섰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며 ‘다시 오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면 될 일이다. 그 선택은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야생의 느낌을 주는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는 

2020년에 제작 방영된 국내에서 최초로 정원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을 소개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원의 문화적,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연결하는 기획물이었다. 각각의 의미들은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로 모여들었다. 이 기획물뿐만 아니라 즐겨보는 다양한 ‘정원, 집, 마당’의 키워드를 가진 콘텐츠에서 전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나다운 삶.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것을 찾고 감수하고 선택하는 것’이라고 감히 요약할 수 있겠다. 코로나19로 반려식물, 플랜테리어(식물을 컨셉으로 하는 인테리어), 가드닝 문화가 확산하였다고 하지만 실은 그 이전부터 가드닝 트랜드는 일기 시작했고 출판가에서는 몇 해 전부터 핫한 아이템으로 출판물이 증가하던 추세였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서울 ‘7017 고가’를 연상시키는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사례가 나온다. 슬럼가였던 고가 철로를 도시 정원으로 재구성해 활성화한 성공사례로 전 세계적인 모델이 되기도 했다. 약 2.4km 거리의 하이라인을 찾는 방문객은 년 500만 명 수준이라고 한다. 뉴욕 무어-잭슨 커뮤니티 정원의 경우엔 약 600여 개 커뮤니티 정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핵심은 '텃밭'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연구 결과 많은 사람이 정원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웃들'이라는 단어를 반복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우리에게 정원이 어떤 의미와 가치로 다가오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 정원 관리책임자는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하이라인 정원의 기본 개념은 바로 생태적인 접근이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어렸을 적 이곳에서 봐왔던 야생의 느낌을 보고 싶어 한다. 정원이나 텃밭을 공유 공간, 공공 공간에서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도시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취향과 여건에 따라 사적 공간이든 공유 공간이든 작든 크든 자연을 가까이하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그냥, 일단 해보는 거예요.
당신이 먹고 싶은 것으로당신이 보고 싶은 것부터



정원 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연히 실패할지도, 잘못될지도 모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식물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선인장이 될 수도 있고, 나무 혹은 야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채소 종류나 허브가 될 수도 있어요. 
만약 식용작물을 기르고 싶다면 당신이 먹고 싶은 걸 기르세요. 
씨앗을 몇 개 뿌려 보세요. 그리고 정원을 가꾸어보세요. 
정말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럼 점차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전문용어 몇 개 모른다고, 식물이 죽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일단 해보는 거예요.

영국의 정원사 ‘몬티돈 Monty Don’ 인터뷰 중

 

▲ 사진제공 : 김도경
▲ 사진제공 : 김도경

BBC <가드너스 월드>를 30년 동안 진행한 영국의 정원사 몬티돈의 이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냥 지금 시작해보라고. 내가 보고 싶은 식물, 꽃을 심고, 혹은 내가 먹고 싶은 채소를 심어서 길러보라고 말한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에 소박하게 마음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보라는 그의 말은 나 자신을 식물 킬러라며 식물 키우기에 자신감이 없던 내게 그 어떤 말보다 시작해 볼 용기를 선사했다. 잡지에 나오는 멋진 테라스가 아니어도, 예쁜 정원 소품이 없어도 식물 그 자체로 충분했다. 깨진 작은 화분도 ‘나만의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부족함 없이 누릴 수 있다. 흥미를 느끼는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아주 작은 시간의 나눔으로도 작은 우주를 담아낼 수 있음을 알았다. 온통 초록을 보고 싶으면 바깥의 큰 정원으로 걸어가 그곳에 내가 담기면 된다. 그리하여 나는 작은 우주의 한 점이 된 나를 만난다.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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