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㉑ -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물들에 관하여
일상문화탐구㉑ -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물들에 관하여
  • 김도경
  • 승인 2021.09.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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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김도경

“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삽과 망설임
단호하고 명료한 정의에 서늘함이 감돈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연필과 지우개’라는 사물에 입힌 작가 김 훈의 문장이다. 거추장스러운 설명도 수식도 어려운 단어도 없다. 이 짧은 문장은 그의 몸을 관통하며 서슬이 퍼렇게 자신을 증명해낸다. 이 문장이 나오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연필을 깎고 지우개 가루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아냈을까.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김 훈 『연필로 쓰기』 중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쓰는 우리 시대의 몇 남지 않은 작가, 김훈. 그에게 ‘연필과 지우개’는 이생에서 살아가기 위한 무기이자 악기이며, 밥벌이의 연장인 셈이다. 

지배적 관계에서
상호적 관계로

연필은 ‘필기도구의 하나. 흑연과 점토의 혼합물을 구워 만든 가느다란 심을 속에 넣고, 겉은 나무로 둘러싸서 만든 물건’이다. 지우개는 ‘글씨나 그림 따위를 지우는 물건’이다. 이 단순한 개념의 ‘연필과 지우개’는 자신의 글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혹은 대장장이의 망치를 닮기를 바라는 작가의 한 생애를 통과했다. 그리하여 기능과 쓸모로 설명된 형태적 사물에서 작가의 정신과 몸이 담긴 인문적 사물이 되었다. 연필과 지우개는 작가의 손에 평생 잡힌 채 그가 삶을 살아내는 길이자 태도를 증명하는 묵직한 연장이 되었다. 

그의 삶을 지켜내고 펼쳐내는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사물이 사람을 증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사물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떠올려 본다. 필요를 느끼고, 만들고, 값을 매기고, 소유하고, 도구화하며 폐기를 결정하는 지배적인 사용자였던 사람과 사물 간에 다른 시각의 관계 설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객체에 머물렀던 사물을 타자로서 바라본다. 나를 단련시키고, 위로하고, 독려하는 상호적 관계로서의 어떤 사물을 떠올려보자. 피아니스트와 피아노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악기와 연주자가 서로의 몸을 맞대고 호흡하며 개입하는 밀도 높은 관계가 되는 순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음악적 충만감!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뷰티 M 독자들도 저마다 떠오르는 특정 사물이 있을 것이다. 밥벌이에 직결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혹은 눈물짓게 하는 추억이 깃든 사물,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취향을 대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헤어디자이너에게는 ‘가위’라는 사물이 작가 김 훈의 ‘연필과 지우개’와 유사한 무기이자 연장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며, 
둘도 없이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무엇인가를 원했다. 
두려움에 찬 노력이 의미 있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던 그 무엇이기를, 
자기 자신을 알게 해주며, 
변화를 가져다주고 살게끔 해주는 무엇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었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중 

내 곁에 오래 있어 줘
함께 가는 반려 사물

나이 들어가며 툭, 마음을 터놓는 편안한 친구를 새롭게 사귀는 일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덩치 큰 가구는 물론 작은 소품이라도 새로 들이는 것에 점점 신중해진다. 구매를 위한 고민과 결정의 에너지, 시간과 돈을 써야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정리하는데도 많은 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내보내야 하는 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특히, 오랜 시간 사용하며 익숙해진 살림살이가 수명을 다해 교체해야만 할 때는 난감함을 느낀다. ‘수리비에 조금 더 보태 요즘 나온 신상품을 사는 게 낫다.’라는 말에 순순히 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것은 수리비를 들이더라도 최소한 한 번은 더 인연을 연장해나가곤 한다.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능적 쓸모는 이미 다했지만, 폐기할 생각이 없는 것도 있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 수많은 사물 중에서 나라는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옷장을 열어 눈으로 훑는다. 거의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을 뒤집어 안에 담긴 잡다한 것들을 쏟아 본다. 주방 수납장을 열어 본다. 신발장의 신발들을 본다. 베란다에 놓인 수납 박스 안을 들여다본다. 책장에 꽂힌 책등을 다시 본다. 어렵지 않게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골라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는 당혹감을 느낀다. 이렇게나 많은 사물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너는 나다. 나는 너다.’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이 탁, 잡히지 않는다. 내 삶이 이렇게 단조로웠던가…. 하는 헛헛한 마음이 슬며시 파도처럼 밀려오려던 차, 아니다. 질문을 살짝 바꿔보기로 한다.

‘나와 함께 나이 들며 오래도록 함께했으면 하는 사물 10가지’로 질문을 바꿔 다시 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수많은 이사에도 살아남아 자리를 차지한 손때 묻은 익숙한 사물들이 내게 알은체를 한다. 많은 책을 헌책방으로 보내고 폐지로 버리는 냉혹한 시간을 지나 내 곁에 남아있는 책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뷰티 M 독자들도 지금 주변을 둘러보시라. 상호교감하는 ‘반려 사물’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사물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함께 한 달 동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혹은 낡아도 기능이 멈춰도 그저 오래도록 함께 가고픈 인생 친구 같은 반려 사물’을 찾아보는 놀이를 해 보자. 집과 일터, 자동차, 가방 속을 찬찬히 둘러보며 찾아 목록을 적어보고 사연을 연필로 꾹꾹 눌러 써보자. 엽서에 보내주시면 10월호에 함께 소개해보겠다. 아마도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물들과의 특별한 교감을 통해 내가 살아온 한 생에 대한 괜찮은 통찰의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함께 기록해 보자.

 

연필을 깎으며

새 연필을 깎았다. 나는 칼을 선택했다. 
칼로 새 연필을 깎을 땐 
왜 항상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연필의 몸이 천천히 밀려 나가는 
소리가 주는 이 기묘하고도 친밀한 안정감.
날 선 긴장감 속에 평화로움을 느낀다.
연필은 칼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한 꺼풀씩 벗겨지며 나무 향을 내뿜는다. 

내 손의 압력과 각도에 따라 
내 느낌으로 빚어낸 나뭇결을 지닌 연필. 
뭉툭한 연필심은 종이에 몸을 비비며 몸을 튼다.
이제, 연필의 한 생을 시작하려 한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한 생을 써 내려갈 것이다. 
백지에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 것인가. 

詩, 김도경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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