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누구나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시네마 -"누구나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 신대욱
  • 승인 2021.10.0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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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소녀들이 꿈꾸던 세상은 스노볼 속 풍경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이었을까. 이들에게 안온한 세계는 주어지지 않는다.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감정의 소용돌이만 눈덩이처럼 커진다. 영화 <최선의 삶>은 흔한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다뤘지만, 비슷한 소재의 여타 영화들과 달리 충격적인 사건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감정을 포착하는데 집중한다.
강이(방민아)와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은 단짝 친구다. 언덕 위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강이는 앞에 잘 나서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며 친구를 챙기는 성향이다. 아빠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온 아람은 버려진 것들에 정을 주며 늘 궤도 바깥을 맴도는 친구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소영은 친구들이 인정하는 예쁜 외모에 뛰어난 성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며, 대부분의 상황을 주도하는 성격이다. 소영은 세 친구 중 유일하게 꿈이 드러나 있다. 모델이 되고자 한다. 이들은 집과 학교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소영의 주도로 충동적으로 가출을 감행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집을 나온 10대 소녀들의 생활은 뻔하다. 이들이 마주한 세상은 가혹하기만 하다. 모텔과 길거리를 전전하다 지하방을 얻어 잠시 안정을 찾는 듯하지만, 이들의 생활을 금새 비참해진다. 이런 생활 속에서 세 친구는 지쳐간다. 아람은 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를 출입하며 소영은 모델 시험에 떨어진다. 이 둘을 지켜보며 위로하는 건 강이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무더웠던 여름밤, 아람이 일을 나가고 남은 강이와 소영 사이 예기치 못한 스킨십이 벌어진다. 이후 찾아온 관계의 균열은 최선을 다하려는 이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지쳐가던 세 친구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학교로 돌아온 이후 소영은 강이를 따돌리고, 세 친구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최선의 삶>은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인 임솔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의 세 주인공이 16살인 것에서 18살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원작을 따르고 있다. 대신 직접적인 설명보다 사건 전후 인물들의 표정으로 감정의 변화를 담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생략된 사연과 거기에서 오는 감정의 변화를 인물들의 표정으로 읽어야 한다.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강이의 내레이션이 전후 사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어쩌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시선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서로 다른 성향의 친구들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던 그런 경험이다. 강이가 바란 것은 스노볼 속 세상처럼 평화로운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 친구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거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세계는 폭력과 배신, 위계가 존재하는 어른들의 세계였다. 그런 점에서 영화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스노볼은 중의적이다(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 스노볼은 볼 안에 담긴 눈 내리는 풍경처럼 따스하고 평화로운 것을 상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악몽 같은 세계다. 실제 원작의 임솔아 작가는 “이 소설은 열여섯 살 때부터 십 년 이상 꾼 악몽을 받아 쓴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시절을 지나온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

영화는 강이의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 진행된다. 이를 위해 촬영은 모두 핸드헬드로 이뤄졌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있는 아프고 그만큼 애틋한 열여덟의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하고자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감정이 얽힌 10대들의 관계와 균열을 예민하게 보여준다.
돌아보면 누군가는 강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람이거나 소영일 수도 있다. 혹은 나에게 이들 세 인물의 모습이 비치기도 할 것이다. 지나온 시절은 언제나 후회가 남지만 그때의 선택은 누구나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선의 삶>은 그 시절을 지나온 모두에게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선사하는 영화다.
무엇보다 세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 해당 인물인 듯 모두 최선의 연기를 펼쳤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표정은 여백을 채운다. 걸스데이 출신 방민아는 강이의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텅 빈 눈으로 감정을 끌어 모으며 먹먹한 느낌을 전한다. 모델 출신 한성민은 모든 것이 지겨운 듯한 소영의 표정을 잘 담아냈다. 심달기는 상처가 가득하지만 낙천적이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아람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중심을 잡는다.
이우정 감독의 첫 장편 <최선의 삶>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KTH상, CGK&삼양XEEN상 2관왕에 올랐고,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상을 수상했다. 배우 방민아는 지난 8월 열린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국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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