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㉒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물들에 관하여
일상문화탐구㉒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물들에 관하여
  • 김도경
  • 승인 2021.10.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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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 묻은 평범한 사물이 제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안도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는 가을밤이다. 소박하고 친밀한 일상의 풍경과 함께 밤을 맞이하는 시간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이번호에서는 지난호에서 제안한 인생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물에 담긴 이야기로 타인의 삶을 나눠보기로 한다. 타인이 살아온 한 생의 모퉁이를 함께 돌아보며 나에게 특별한 사물을 떠올려 보자. 

▲ 그림1 김도경의 LP플레이어
▲ 그림1 김도경의 LP플레이어

<31년을 함께 돌고 돌았네, LP 플레이어>
(필자, 김도경)
내게 가장 소중한 반려 사물은 31년 동안 곁에서 돌고 돌아준 LP 플레이어다. 1990년 3월에 샀다. 그러니까 2021년 올해로부터 31년 전에 시작된 인연이다. 당시만 해도 TV에서 상당히 웅장한 광고를 했던 ‘인켈’ 브랜드 로고가 선명히 남아있다.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유리 수납장, 대형 스피커, 본체는 수많은 이사에 하나둘씩 부서지고 고장 나면서 떠나보냈다. 그때 산 세트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플레이어는 20대부터 30대, 40대를 지나 50대를 함께 하고 있다. 단언컨대 고장이 나서 기능을 상실해도 끝까지 나와 함께 갈 것이다. 구식 플레이어에 맞는 바늘을 구하기 어려운 것 정도는 마땅히 감수할 인생 친구다. 가정 형편상 대학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나는 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는 대신 오래된 주방의 싱크대와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벽지와 장판을 새로 해드렸다. 첫 월급을 집수리에 털어버렸음에도 나를 위한 선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고생의 얼굴이 남아있던 사회초년생의 첫 선택은 화장품도 옷도 아닌 ‘오디오 세트’였다. 90년 당시 우리 집에는 안테나를 뽑아 이리저리 각도를 틀어 주파수를 맞춰 듣던 ‘라디오’가 한 대 있었다. 생각해보시라. 한 대의 라디오를 두고 식구 많은 집에서 얼마나 쟁탈전을 벌였을지. ‘오디오’는 내게 욕망의 대상이었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퇴근길에 인켈 매장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구경하느라 매장 주인이 흘겨보기도 했다. 월급을 다 쓴 나는 막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생애 첫 할부를 긁었다. 방에는 놓을 자리가 없어 거실에 그 오디오 세트를 들이며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사치를 하는 아이’라고 얼마나 많은 핀잔을 받았던가. 아무튼, 둥그런 판을 올리면 스르르~ 바늘이 미끄러지며 빙글빙글 판이 돌아가며 음악으로 나를 위로해준 속 깊은 친구 같은 사물이다. 이 친구가 사력을 다해 움직일 때까지 새로 살 생각이 전혀 없다. 서재에 들어서면 언제나 제일 먼저 내게 알은체를 하는 반려 사물. 오래도록 함께 나이 들어가자. 

▲ 그림2 서지영의 피아노
▲ 그림2 서지영의 피아노

나의 첫사랑, 피아노

(뚱땅뚱땅 연주하는 서지영님)
일곱 살, 아버지의 팔을 베고 누워서 보았던 EBS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만났던 그 날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내 꿈은 당연히 피아니스트야!’라며 아버지를 졸라 다음날 바로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햇볕이 따뜻했던 시절이니 봄 혹은 가을이려나? 7살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생애 처음으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준 피아노 소리. 멋진 드레스를 입고 요정들의 발소리처럼 또로롱 거리던 그 피아노가 내겐 꿈이자 삶이었다. 비록 그 꿈은 현실적인 문제로 깨져버렸지만, 얼마 전 나는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피아노를 다시 갖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클래식 피아노 전공으로 편입한 나의 벗이 자신이 쓰던 디지털 피아노를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도 고등학교 때 피아노 전공을 준비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만두고 지금은 국어 선생님이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멋진 친구가 쓰던 멋진 피아노가 이제 내겐 버릴 수 없는 반려 사물이 되었다. 비록 나는 그 친구처럼 전공하지는 못하지만, 내게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심리 상담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다. 또 어린 시절에 스스로 결정해서 배웠던 피아노라는 악기가 있어 행복하다. 피아노학원을 그만둔 지 32년이 지났음에도 몹시 어려운 곡이 아니라면 연주할 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를 뚱땅거리며 마치 주인공 ‘소피’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나만의 ‘하울’을 만날 그날을 그려보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좋다. 연주해도 좋고, 연주하지 못해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늘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되는 사랑하는 나의 피아노…. 그래, 너의 이름은 소피!

▲ 그림3 이은정의 자전거
▲ 그림3 이은정의 자전거

달려라, 분홍 자전거
(신나게 달리는 이은정님)
저에게는 자전거요. 웬만하면 저의 이동에 대부분 함께하는 친구예요. 작은 바퀴가 마치 안전주의자이자 소심쟁이인 저랑 무척 닮았어요. 바퀴가 작아서 속도도 크게 내지 못해요, 웬만한 턱은 절대 넘어가려고 하지 않아요. 제 몸집보다 작다 보니 어린이 자전거냐고 놀림 받기도 하죠. 꾸며보겠다고 야광 테이프와 물감을 여기저기 발라봤는데 지저분해서 누가 가져가지도 않는다고들 하네요. 자전거를 타다가 제가 위험을 느낄 때는 적당한 높이에서 발을 바닥에 디딜 수 있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의 짐을 나눠 들어주는 바구니도 있고요. 초록 신호등이 5초만 남아도 휙~건널 수 있게 해주기도 해요. 자물통도 안 잠그고 먼지도 안 털어주고 막 대하지만 제겐 소중한 존재예요. 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저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는 저의 소중한 반려 사물이죠. 

▲ 그림4 안젤라의 일곱살 민지
▲ 그림4 안젤라의 일곱살 민지

딸의 미소를 닮은, 흙인형

(품에 안은 평온한 안젤라님)
나에게로 와 수많은 행복감을 선사하던 딸은 3월의 봄 햇살 아래 하늘 사람이 되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아빠, 엄마, 남동생을 두고 먼저 하늘로 떠난 딸, 민지가 보고파서 계룡산 상신리를 헤매다 어느 공방에서 만난 테라코타 인형 작품. 흙으로 구워낸 자연 그대로의 인형. 인형을 처음 봤을 때 일곱 살 무렵 딸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저 인형처럼 활짝~ 해맑게 웃는 천사 같은 아이였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던 그 미소. 딸은 내게 그렇게 자주 웃어주었다. 공방의 작가는 작품에 금이 가서 팔기를 망설였다. 그 인형의 표정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상관없었다. 일곱 살 민지를 닮은 인형을 안듯이 집에 안고 왔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예쁘지?”하고 물었더니 “무슨 흙 뭉탱이를 돈 주고 사 오냐?”고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무뚝뚝한 말 한마디 던지며 얼굴을 돌리는 아들의 눈길에서 난 알았고 느꼈다. 엄마 마음처럼 저도 이미 맘으로 만난 제 누나임을. 딸이 떠나고 병을 얻어 떠난 남편의 영정사진과 함께 이 인형을 데리고 제주 일년살이를 가겠다고 하니 말수 적은 아들이 “그 인형은 그냥 집에 두고 가요.”라고 한다. 그래야 자기가 안 쓸쓸할 것 같다고….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이 인형은 이미 딸이고, 누나 같은 존재다.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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